듀케인 패밀리 오피스의 SEC 제출 목록은 9월 28일에도 9월 14일 서류가 마지막이에요. 드러켄밀러 본인의 새 인터뷰나 발언도 없었고, 9월 27일 CEOWORLD에 실린 'AI 이익 거품 경고' 기사는 9월 10일 발언을 다시 풀어 쓴 해설이었어요. 추석 연휴로 쉬던 한국 증시가 오늘 다시 열리지만, 그가 다녀간 종목의 첫 시세는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늘은 그가 서른여섯 살에 혼자 운전대를 잡고 벌인 거래 이야기를 골랐어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다들 통일 비용에 짓눌릴 거라던 서독의 돈 마르크를 그는 거꾸로 샀어요.
| 확인 순서 | 최근 24시간 | 최신 유효 항목 |
|---|---|---|
| SEC 공시 | 0건 | 9월 14일 Schedule 13G·13G/A(가디언 메탈 리소시스 지분 12.7% 보고). 그 뒤 새 서류 없음 |
| 포트폴리오 변화 | 0건 | 6월 30일 기준 13F(8월 14일 접수, 신고 총액 약 52억1000만 달러, 95개 항목, 최대 보유 나테라 16.6%) |
| 인터뷰·강연·기고 | 0건 | 9월 22일 성남 원익그룹 사옥 현장 인터뷰가 마지막 본인 발언. 공개 자료 모음 최신 항목은 올해 2월 팟캐스트 |
| 주요 보도 | 새 행보 0건 | 9월 27일 CEOWORLD 해설. 직접 인용 없이 9월 10일 '미국 차입비용이 조금 낮다'는 발언과 9월 16일 연준 인상을 엮은 글 |
SEC 제출 목록과 13F 원문, 비숍록캐피털 공개 자료 모음, 영문·국문 뉴스 검색으로 확인했어요.
그가 9월 22일 경영진을 만난 것으로 알려진 두산에너빌리티는 연휴 전 마지막 거래일인 9월 23일 82,700원으로 4.39% 내렸어요. 외국인이 약 156만 주, 기관이 약 87만 주를 팔았고 개인이 약 240만 주를 샀어요. 같은 날 첫 방문지 원익IPS는 장중 10% 넘게 뛰었다가 1.61% 오른 132,400원에 끝났고, 여기서도 외국인은 팔았어요.
| 종목 | 날짜 | 종가 | 전일 대비 | 외국인 | 기관 | 개인 |
|---|---|---|---|---|---|---|
| 두산에너빌리티 | 9월 22일 | 86,600원 | +1.52% | -404,903주 | -123,030주 | +519,145주 |
| 두산에너빌리티 | 9월 23일 | 82,700원 | -4.39% | -1,560,727주 | -869,702주 | +2,402,184주 |
| 원익IPS | 9월 23일 | 132,400원 | +1.61% | -157,075주 | -9,567주 | +169,336주 |
해석이에요. 방문 소식에 개인이 사고 외국인이 파는 모양이 두 종목에서 똑같이 나왔어요. 다만 두산에너빌리티는 9월 들어 하루 5% 안팎씩 오르내린 종목이라, 하루 하락을 방문 효과가 꺼졌다는 신호로 읽기는 어려워요. 그는 9월 22일 어느 회사에 투자할지 묻자 "구체적인 회사명을 거론하기 어렵다"며 답을 피했어요. 한국경제 영문판은 그가 반도체·에너지·전력 인프라의 병목 자리에 있는 기업을 찾고 있다고 전했어요. 추석 뒤 첫 장은 오늘이고, 내일(9월 29일)은 금융위원회·한국거래소의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기관투자가 설명회를 열어요.
미 국채 30년물 금리는 9월 25일 5.49%가 가장 최근 값이에요. 26~27일은 주말이었고 28일 값은 아직 올라오지 않았어요. 드러켄밀러가 8월 기고에서 비판한 재무부의 장기 국채 되사기(바이백)는 9월 24일 20~30년 구간에서 한도 60억 달러 가운데 약 41억 달러, 68%만 사들였어요. 그 뒤로 새 운영은 없어요.
1989년 8월, 소로스 밑에서 일한 지 1년쯤 된 드러켄밀러는 보스와 처음으로 크게 부딪쳤어요. 소로스가 그의 채권 포지션을 말도 없이 팔아 버렸거든요. 둘은 속에 있던 말을 다 쏟아냈고, 소로스는 여섯 달 동안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어요. 소로스는 동유럽 나라들이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일을 돕겠다며 떠났고, 퀀텀 펀드의 운전대는 오롯이 드러켄밀러 손에 남았어요.
시장의 통념은 단순했어요. 서독이 가난한 동독을 떠안으면 돈이 엄청나게 들고, 나라 살림이 적자로 기울면 그 나라 돈은 약해진다는 거였어요. 드러켄밀러는 반대로 봤어요. 근거는 소로스가 책 『금융의 연금술』에 적은 다소 과격한 이론이었어요. 정부가 돈을 크게 풀어 적자가 커지는데 중앙은행은 돈줄을 죄면, 높은 금리를 좇아 바깥 돈이 몰려와 그 나라 통화가 오히려 오른다는 이론이에요.
"장벽이 무너지자 서독이 동독 재건 비용으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낼 게 분명해졌어요. 동시에 분데스방크는 어떤 인플레이션도 참지 않을 터였죠. 나는 마르크에 정면으로 뛰어들었고, 아주 훌륭한 거래가 됐어요."
잭 슈웨거 『The New Market Wizards』(1992) 인터뷰. 7 Circles 정리본의 인용을 우리말로 옮겼어요.
그에게 이 이론은 처음 보는 가설이 아니었어요. 1981~84년 미국에서 이미 한 번 확인된 일이었거든요. 레이건 정부의 적자가 커지자 다들 달러가 떨어진다고 했지만, 볼커의 연준이 금리를 높게 유지하자 돈이 미국으로 몰려 달러는 크게 올랐어요. 그 무렵 그는 바로 그 한가운데 있었어요. 듀케인을 막 차린 1981년, 볼커가 물러서지 않을 거라 보고 자본 절반을 수익률 14%짜리 30년 국채에 넣었거든요. 1989년 서독은 그 판박이였어요. 적자를 낼 정부가 있었고, 물가라면 질색하는 분데스방크가 있었어요. 통일 붐으로 경기가 뜨거워지면 분데스방크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고, 그러면 마르크가 강해진다는 계산이었어요.
| 시장의 통념 | 드러켄밀러의 읽기 | |
|---|---|---|
| 통일 비용 | 서독 재정이 적자로 기울어요 | 적자는 맞아요. 다만 그 돈이 동독 경기를 달궈요 |
| 중앙은행 | 경기를 위해 느슨하게 갈 거예요 | 분데스방크는 인플레이션을 용납하지 않아요. 금리를 올려요 |
| 돈의 흐름 | 불안한 서독에서 빠져나가요 | 높아진 독일 금리를 좇아 들어와요 |
| 결론 | 마르크 약세 | 마르크 강세. 1981~84년 달러와 같은 모양 |
드러켄밀러가 인터뷰에서 밝힌 논리를 정리한 표예요. 베팅 규모를 20억 달러로 적은 글이 있지만 이는 정리 글 필자의 수치이고 본인 인용은 아니에요.
이 거래에는 그가 평생 말해 온 두 습관이 그대로 들어 있어요. 지금 숫자보다 18개월 뒤의 그림을 먼저 그리라는 첫 스승 드렐레스의 가르침이 하나예요. 장벽이 무너진 그날의 서독은 불안했지만, 그가 본 것은 통일 붐이 달아오른 뒤의 독일이었어요. 다른 하나는 "시장 전체를 움직이는 건 기업 이익이 아니라 중앙은행과 돈의 흐름"이라는 말이에요. 마르크 거래의 주인공은 서독 기업이 아니라 분데스방크였어요.
마르크에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 더 붙어 있어요. 소로스 밑에서 일을 시작한 직후, 달러를 비관하던 드러켄밀러는 마르크 대비 달러를 파는 포지션을 크게 잡았어요. 소로스가 얼마나 샀느냐고 묻자 10억 달러라고 답했고, 소로스는 "그걸 포지션이라고 부르나"라며 두 배로 늘리게 했어요. 이 일화가 장벽 거래와 같은 거래인지는 원문에 적혀 있지 않아요. 그는 이 가르침을 "돼지가 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로 줄였고, 훗날 책상 위에 '제롬'이라는 노란 도자기 돼지를 두고 좌우명으로 삼았어요.
드러켄밀러는 같은 인터뷰에서 소로스를 두고 "옳을 때는 아무리 많이 가져도 모자란다고 보는 사람"이자 자기가 본 가장 뛰어난 손절가라고 했어요. 확신이 서면 크게 싣고, 틀리면 미련 없이 버린다는 두 원칙이에요. 2021년 골드만삭스 대담에서도 확신이 드는 기회는 한 해 서너 번뿐이고 그때는 자산의 50~70% 이상을 한 바구니에 싣는다고 했어요. 통화와 채권을 즐겨 다루는 이유로는 하루 24시간 거래돼 틀렸을 때 생각을 바꾸기 쉽다는 점을 들었어요.
3년 뒤인 1992년 9월, 비슷한 장면이 다시 왔어요. 이번에도 방아쇠는 분데스방크였어요. 슐레징거 총재의 발언을 보고 드러켄밀러가 파운드 공매도를 키우자고 하자, 소로스는 "목덜미를 노려라"며 더 키우게 했어요. 1989년에 분데스방크의 고집을 믿고 마르크를 샀던 사람이, 1992년에는 같은 고집에 기대 파운드를 판 거예요.
해석이에요. 지금 미국은 1989년 서독과 닮은 데가 있어요. 정부 부채는 40조 달러를 넘었어요. 연준은 9월 16일 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3.75~4.00%로 만들었어요. 위원 18명 중 16명은 연내 한 번 더 올릴 거라고 봤어요. 적자에 긴축이 겹친 모양이에요.
9월 10일 FT 보도로는 드러켄밀러가 유로와 파운드를 파는 포지션을 들고 있다고 했어요. 적자 나고 금리 올리는 나라의 통화 쪽에 서는 1989년의 방향과 같아요. 그런데 올해 2월 팟캐스트에서는 외국인이 달러를 너무 많이 들고 있다며 달러 약세를 점쳤어요. 일곱 달 사이 판단이 움직인 거예요. 베선트 재무장관도 8월 말 "스탠은 생각을 자주 바꾼다"고 했어요.
다른 점도 있어요. 1989년 분데스방크의 긴축은 높은 금리라는 신호로 돈을 끌어들였어요. 2026년 재무부는 장기 국채를 되사서 그 장기금리를 누르려 해요. 드러켄밀러가 8월 기고에서 "펀더멘털에 맞서 가격을 지키는 정부는 언제나 진다"고 쓴 대목이 여기와 맞닿아요. 그가 직접 1989년과 지금을 견준 발언은 없어요. 위 연결은 그의 옛 설명을 지금 숫자에 대 본 것이에요.